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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나는 지금 부재중도 아니고, 출장중도 아니었다. 멀쩡히 나는 그 애의 옆집에서 회사에 다녔고, 로밍이 거지 같은 외국도 아닌데. 근데 왜 넌 연락도 없고, 보지도 못하는지. 습관처럼 보내는 문자에 오는 답장은 한결같았다.

 

요즘 왜 안 보여? -바빠요.

뭐 하느라? -뭐 하느라.

밥 먹을래? -싫어요.

보고 싶은데. -그러세요.

 

아니, 나 지금 입술 한 번 뺐었다고 까이고 있는 거니? 황당함에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구겼다. 아, 시발. 커피 남았었는데.

 

 

N. 자꾸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평소에 잘 안보이냐고? 언제 마주쳐서 입술에 몸통박치기를 할까봐 피해 다녔다. 바쁜가? 아니 전혀. 백수인 내가 바쁠 리가. 요즘 자주 보는 보고싶다에 기대감 없이 받아쳤다. 네에, 네에 그러세요.

 

 

M. 와. 어이없네, 이 새끼 이거?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매달리고 까이는 사람이 아닌데. 존나 아닌데. 울컥한 마음에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전, 오피스텔 앞에서 그 애를 기다렸다. 불 꺼진 거 보니 아직 안 들어갔을 테고. 애꿎은 담배만 조지고 있는데 저 멀리 편의점 비닐을 달랑거리며 올라오는 뉴트가 보였다.

 

“야. 너 이리로 와.“

 

손을 까딱이는 나의 부름에 그 애의 발이 우뚝 멈췄다.

 

 

N. 간식을 먹을 겸 편의점에 다녀왔다. 간식을 가득 채운 채로.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조용한 폰을 쥐고 간 집 문 앞에는 민호가 있었다. 저기 왜 있는 거야?

 

"여기 왜 있어요? 거기 내 집인데."

 

 

M. 너네 집인 줄 누가 모르냐? 뚱해진 얼굴에 얼른 연기를 흐트러트리며 성큼 다가섰다. 그러니까 네가 보고 싶었던 건 맞는데, 나 왜 널 보니 화가 나냐.

 

“너 나 일부러 피했냐?“

 

 

N. 담배 냄새를 훅 풍기며 내 앞에 섰다. 뚱하고 화난 표정이 무서웠다. 일부러 피했냐고? 그렇다. 만난 지도 얼마 안 된 사이에 반할 수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저씨 무서워서 피했어요."

 

그의 옆을 지나쳐 도어락 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열리는 문 틈새로 들어갔다.

 

 

M. 내 발은 무슨 죄로 자꾸 철문 사이에 끼여야 하는가. 무슨 죄는 무슨 죄야. 발 주인 연애가 존나 안 풀리는 게 죄지. 닫히는 문 사이로 발을 끼워 넣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내가 너 잡아 먹어? 무섭긴 지랄로. 뭐 또 도망가게?“

 

 

N. 문을 닫으려는 순간 철문 사이에 발이 들어왔다. 힘껏 닫았는데. 아프겠네...

 

"아저씨 완전 잡아먹을 기세거든요...? 아니 갑자기 보고 싶었다 하고 입 맞추고. 내가 도망 안 가요? "

 

무슨 썸도 안 탔는데 갑자기 이러면 당연히 피하지.

 

 

M. 갑자기? 갑자기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럼 내가 그동안 너한테 온종일 연락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 보고, 네가 해 달라는 거 다 해주고. 그건 왜 그런 것 같은데? 울컥. 마음이 차올랐다.

 

“넌 내가 우습지?“

 

 

N. 우습다니...? 저건 또 무슨 소리인가.

 

"뭐가 우스워요. 그런 적 없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말이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드는 건 분명했다.

 

 

M. 내가 우습지 않고서야. 치미는 짜증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진한 한숨이 흐트러져 나왔다.

 

“이제 와서? 무서워? 허. 감당 못 하겠으면 미리 도망치지 그랬냐. 다 받아주고 왜 이제와ㅅ, ...됐다. 그만하자, 시발.“

 

 

N. 이게 무슨 싸운 연인의 대화도 아니고. 내뱉는 말 족족 상황이 안 좋아졌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싫었다.

 

"내가 뭘요? 이웃이랑 친해진 게 뭐요? 썸이라도 진하게 타고 이런 소리 들으면 덜 억울하지...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가요."

 

그냥 갔으면. 이 이상 싸움으로 치닫는걸 보기 싫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내 잘못으로 생각하고 끝냈으면 했다. 당황과 억울함이 몰려 눈물이 차오를 거 같았다.

 

 

M. 이 이상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아 돌아서려는데 그의 말이 나를 다시 붙들었다. 썸? 아주 시발, 요즘은 어딜 가나 툭하면 썸 타령.

 

“우리가 한 게 단순히 이웃이라고? 시발, 내가 옆집이란 이유로 시커먼 사내새끼한테 그렇게 친절한 놈으로 보였나 보다? 고마워. 고맙긴 한데 아니야. 우리가 한 게 썸이 아니면 뭐냐? 넌 그냥 형 동생이 일과를 시시콜콜 보고하고, 보고 싶어 하고, 입 맞추고 싶어 하냐? 오해 하지마. 나 게이 아냐.“

 

한숨 같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N. 이게 썸이였다고? 솔직히 난 입 맞추고 싶은 적 없었는데!

 

"게이 아니라면서요. 근데 왜 나한테 그랬는데요. 왜 만지려 들고 입 맞추려 하는 건데요? 내가 뭘 어쩐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못했어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아예 얘기 말까요? 연락 하지 마요? "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막 뱉어내고 나 또한 상처받고 있었다.

 

 

M. 저도 한껏 화가 치밀었던지 빠르게 쏟아내는 그 애의 말들이 고스란히 마음속에 쌓였다. 무얼 하면 되냐고?

 

“고민해. 나에 대해 고민해. 내가 너한테 왜 그랬을까 고민하고, 너는 어떤가 고민해. 내가 네게 쏟는 그 애정들을 받을 때 네 마음은 어땠는가 고민해. 그렇게 고민해도 아니면 그땐 내가 물러설 테니까. 너한테 왜 이러냐고? 내가 시발, 내가 너 좋아해서 그래.“

 

비집고 들었던 발을 빼내고 쾅 소리가 날 만큼 세게 문을 닫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N. 쾅하고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내가 좋아서 그랬다고 한다. 형 동생간의 좋아함이 아니었다. 바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좀 전의 그 몇 분이 나를 지치게 했다. 내 잘못과 그가 생각해보라던 것들을 계속 고민했다. 그 고민은 밤 늦게, 내가 지쳐 기절잠을 자 버릴 때까지 계속 되었고 꿈에서도 그 고민이 이어지는 듯 했다. 아마 아주 늦게 일어날 것 같은 예감과 당분간은 그를 보기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계속 이루어진 고민의 결론은 내가 그에게 좋아할 틈을 줬다는 것이고 멍청한 내 생각에 그가 상처받았다는 것이었다. 미안함과 속상함에 몸이 축 내려앉았다.

 

 

M.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나는 그동안 무얼했나, 허탈함이 밀려왔다. 싫다는 애 희롱한 기분도 들고, 나 혼자 내 감정에 빠져 상대를 오해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고민은 쟤보고 하라고 한 건데 왜 내가 밤새 골 터지게 고민이야. 고민에 빠진 와중에도 감은 눈 위로 뉴트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빨갛게 열이 오른 눈가와 하얗게 질린 뺨이. 출렁이던 짙은 눈동자가. 몰아붙인 것은 나였고, 상처받은 그 얼굴에 더 아픈 사람도 나였다. 모든 게 나에게 너무도 불리했다.

 

좋아하는 게 죄에요.

 

언젠가 스치듯 이야기하던 회사 후배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게 죄고, 내가 죄인이었다. 그런 내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그 애였고. 그러나 어렴풋이 예상되는 결과에 한숨이 흘렀다. 이사를 가야 하나. 지속된 스트레스에 편두통이 그칠 생각을 않았다. 나는 부러 생각을 멈추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 나 내일 너네 집에서 좀 자도 되냐.“

 

당분간 집을 벗어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EP.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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