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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아. 깜박하고 잠들었다. 필름이 뚝 끊긴 듯 잠시 눈을 감은 뒤로 기억이 안난다. 또 기절잠... 휴대폰의 문자를 보고 노트북의 화면을 보았다. 꺼졌다! 역시 시간이 약인가 보다. 그리고 다시 문자들을 읽어내려갔다. 엄청나게 많이 왔구나...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 화면을 급하게 쳐갔다

 

[아저씨 잠들었어요...]

 

 

M. 월요일 아침에 터널에서 사고 내는 새끼들은 머리털을 죄다 뽑아놔야 해. 밤을 샌 바람에 퀭한 얼굴로 잡아탄 택시는 40분째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불쾌한 심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로 창밖만 노려보고 있는데 손바닥에 붙은 듯 쥐고 있던 핸드폰이 드디어 울렸다. 잤어요...? 잤다고? 그렇게 금방? 새삼 밤새 폰을 쥐고 딸깍거린 스스로가 한심해 성질이 뻗쳐올라 액정을 부술 듯 강한 힘을 주어 타자를 놀렸다.

 

[잠이 오셨나 봐요. 나한테 미션 주고?]

 

 

N. 이불 속에서 잠을 떨쳐내려고 바둥거리는데 진동이 울렸다. 난 미션을 준 적이 없는데...? 그리고 잘 수도 있는 거지 무어.

 

[기절 잠 잘 수도 있죠.]

 

 

M. 잘 수도 있죠? 뭐요? 그 타이밍에? 컴퓨터가 안 되는데?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자 운전석의 기사분이 돌아본다. 그를 향해 친절히 웃어주며 다시 답장 창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 너 컴퓨터 고장 난 거 뻥카고 형 보고 싶어서 문자 보냈지?]

 

 

N. 잠을 못 깨고 베개에 얼굴을 묻으니 진동이 울렸다. 이 아저씨는 변태에 자뻑인가봐. 이웃이 이런 심각한 사람이라니...

 

[자뻑도 있다니... 진짜 컴퓨터 안 돼서 기다리다 잠든 거거든요? 솔직히 아저씨 인기 없죠?]

 

 

M. 뭐가 없어? 아, 이 조그마한 게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없으면 뭐. 네가 나랑 만나주게?]

 

아, 문자 보내다 내려야 할 곳 지나쳤다. 망할. 또 지각이네.

 

 

N. 이 아저씨는 또 무슨 소리람... 하품하고선 느릿느릿 답을 보냈다.

 

[아뇨. 절대. 전혀.]

 

 

M. 지각의 대가는 노처녀 과장의 타박이었고, 4절까지 이어진 잔소리를 견뎌내고 자리로 돌아오자 핸드폰이 반짝인다. 절대. 전혀. 세상에 '절대'든 '전혀'든, 편식할 때 빼곤 없는 말이지. 오기가 붙는 기분.

 

[그러다 반하면 어쩌려고?]

 

 

N. 한숨 푹 자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꼼지락대다 인형을 안고 폰을 보았다. 반하다니 무슨...

 

[안 반해요.]

 

 

M. 난들 너한테 이빨깔 줄 알았겠냐? 얘가 아직 어려서 인상을 모르는구먼. 커피를 마시며 폰 액정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유쾌하게 움직였다.

 

[그래. 그럼 말고. 형은 너한테 한번 반해볼게.]

 

 

N. 반한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람?

 

[네. 매력 있는 저한테 반해보세요.]

 

그저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M. 그러니까. 이 나이쯤 되면 스스로를 귀엽다 칭하는 여우 같은 여자에겐 관심이 없는데 하물며 남자 놈이 이러는데 귀여울 건 또 뭐람.

 

[좋아. 반하고 나면 다음은 뭐겠냐?]

 

 

N. 반하고 다음? 사귀는 건가?

 

[사귀는 거예요?]

 

 

M. 반하고 사귀고. 직렬형 사고진행에 웃음이 터졌다. 어린 태가 풀풀 나는 풋풋함이었다. 아직 연애를 모르는 아이의.

 

[나만 반하면 되나. 널 내게 반하게 해야지.]

 

 

N. 잠이 더 깼는지 저 아저씨는 이상한 소리만 했다. 어린 게 취향인가...? 약간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평생 안 반해요. 대학 들어가면 예쁜 애들 많을걸요.]

 

 

M. 틈을 안 주네. 더 파고들고 싶게. 어딘가 즐거워진 기분에 슬쩍 입술이 올라갔다.

 

[예쁜 애 만나고 와. 연애도 해보고. 결국 나한테 올 것 같으니까. 밥이나 챙겨 먹어라.]

 

그리고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매일같이 연락을 이어갔다.

E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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