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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6 (1)

 

 

N. 그 이후로 자주 연락하면서 가까워졌다. 옆집에도 서슴없이 가고 장난도 칠 만큼 대부분 내가 놀러 가는 편이었다. 그가 올 때는 내가 집에서 사고를 쳤을 때? 민호는 아저씨라 부르는 걸 싫어했다. 엄청 늙어 보인다나? 벌써 달걀 한 판 나이인 걸 서글퍼한다. 그래서 요즘은 형이라고 부른다. 가끔 오빠라고 불러 달라는 말에 한번 더 그의 취향을 의심해보게 된다. 친해져도 변태는 변태인가보다.

 

아직 개학이 다가오지 않아 따분한 나는 오늘도 아저씨네 집 초인종을 지문이 닳도록 눌렀다. 이래야 좀 빨리 나오는 거 같더라.

 

"아ㅈ... 아니 형 문 열어줘요."

 

 

M. Q. 하루 중 옆집 소년과 문자를 나누는 시간은?

 

A. 눈 떴을 때부터 뉴트가 잠들기 직전까지.

 

보통 문자가 오면 바로 전화를 하고, 전화가 길어질 거면 차라리 만나자는 주의였던 내가 온종일 핸드폰을 쥐고 낄낄거리는 모습에 주변에서는 심심치 않게 내게 물어오고는 했다. 요즘 연애하세요? 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때로 그 애가 먼저 잠이 든 밤이면 홀로 침대에 널브러져 우리를 생각했다. 서로의 일과를 알고, 기호를 알고, 사소한 감정상태를 알고. 그러면 나오는 다음 질문은 그거다. 아니, 쟤가 뭐라고? 농담 삼아 놀려주려는 생각에 네게 반하니 어쩌니 했지만 정말로 내 안에 그 애를 들여 앉힐 줄은 나도 몰랐다. 아니, 생각해 봐. 나는 창백한 인상에 키가 작고 가슴 크고 엉덩이 작은 여자가 이상형인데. 이었는데. 왜 나는 저 키만 멀쭉하게 크고 비쩍 마른, 심지어 바락바락 말대꾸가 입에 붙은 저 어린 꼬마가 자꾸 생각이 나는가. 왜 저놈이 사소하게 다친 일에도 펄쩍 놀라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저 녀석을 만나기 위해 무리하여 이른 퇴근을 챙기는가.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진심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 후에 나는 돌아서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으며 달려나갈 나를 알았다. 그렇게 되면 어린 그 애는 달아나겠지. 입가에 맴도는 쓴맛에 괜히 담배를 꺼내무는데 마침 초인종이 울리기 무섭게 옆집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이 붙은 담배를 한 손에 쥐고 얼른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

 

 

N. 문이 열리자마자 느껴지는 담배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담배 냄새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옷에 냄새가 나버리니까.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담배 피워요? 냄새..."

 

 

M. 손등으로 코를 가리며 집으로 들어서는 그의 모습에 괜히 머쓱해졌다. 아니. 내가 내 집에서 피는데 왜 미안하고 그래... 슬그머니 베란다로 걸음을 옮겼다.

 

“항상 피는데 네가 몰랐던 게 더 신기하다.“

 

 

N. 들어오자마자 러그에 앉아서 베란다를 본다. 담배를 피우러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코를 계속 막고 있었다. 코맹맹이 소리가 계속 나왔다.

 

"나 있을 때는 안 피웠잖아요"

 

 

M. 내가? 사장이랑도 맞담배를 피우는 내가? 그랬나... 생각을 더듬어보자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웃긴다, 나 진짜. 피실 웃음을 흩트리며 담배를 끄고 거실을 가로질렀다. 등 뒤로 따라 붙는 시선이 따가웠다.

 

“양치하고 너한테 입맞추 게.“

 

 

N. 양치하고 입 맞춘다니? 또 변태 아저씨 모습 나왔네. 슬쩍 멀찍이 떨어졌다. 거짓말일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이상한 사람 보는 표정은 못 지우겠다.

 

"입 맞추면 나 집에 갈 거예요."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되지 않는 협박을 했다.

 

 

M. 그랬다고 갈 거면 애초에 안 왔을 놈이 협박은. 간단하게 이를 닦고, 양치에, 드레스 퍼퓸까지 뿌리고서야 거실로 나갔다. 주스라도 주려 냉장고를 향하다 말고 방향을 돌려 러그 위에 다리를 펴고 앉은 그 애에게 다가갔다. 경계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는 커다란 눈동자에 괜히 장난이 들어 얼굴을 훅 내밀고는 그 애의 입술 앞에 멈춰 섰다. 그러니까, 누가 툭 밀면 닿을 그 거리. 놀란 얼굴에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등을 돌렸다.

 

“장난. 오렌지 주스 마실래?“

 

 

N. 그를 기다리다 휴대폰을 꺼내고 게임을 했다. 갑자기 드리워진 그늘에 올려다보았다. 이게 또 무슨 짓이래? 그러다 갑자기 얼굴을 들이미는 행동에 놀라 몸이 굳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 당황스러움에 슬쩍 몸을 뺐다. 이게 무슨...? 그리고 갑자기 들린 웃음과 장난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게 장난...? 장난 두 번 하다 키스하게 생겼네.

 

"계속 이런 장난 하면 경찰부를 거예요. 아저씨랑 논 뒤로 112 저장 해놨어요"

 

 

M. 눈을 댕그랗게 뜬 얼굴에 슬쩍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난 두 번이면 키스도 하겠네. 그렇게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키스나 해보고 신고당하면 억울하지나 않지.“

 

허쉬밖에 없는데 이거 주면 애 취급이라고 화내려나.

 

 

N. "키스는 꿈 깨요. 절대 그럴 일이 없을걸요. 이상한 말고 오렌지 주스 주세요"

 

오늘은 일찍 집에 가야겠다고 느꼈다. 저러다 진짜 입 맞출 기세였다.

 

 

M. 뉴트의 말에 다시 냉장고를 보지만 여전히 냉장고엔 맥주와 초콜릿 우유 뿐이었다.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야채칸을 굴러다니던 오렌지 하나를 꺼내 던져주자 보기 좋게 받아들었다.

 

“주스는 없고 진짜 오렌지.“

 

 

N. 오렌지 주스 마실 거냐고 묻길래 주라고 했더니 진짜 오렌지를 던져줬다. 이거 아저씨 개그 아니지? 오렌지를 들고 일어나 주방에 가 과도를 꺼내 들었다.

 

"먹기 좋게 좀 잘라주지는 통째로 주는 게 어딨어요"

 

 

M. 워. 조그마한 게 칼까지 들고 흘겨보는데 이거 호러가 따로 없다. 그 애의 손에서 오렌지를 빼앗아 들고는 손으로 껍질을 벗기자 새큼한 과일향이 풍겼다. 멀거니 보고만 있는 아이의 입속에 과육 하나를 밀어 넣자 냉큼 오물거리는 입술이 눈에 든다.

 

“오빠가 먹여주니 더 맛있고 그렇지?“

 

 

N. 내 손을 떠난 오렌지는 그에 의해 껍질이 까졌다. 새콤한 향을 만끽하기도 전에 입에 오렌지가 들어왔다... 입안에 달콤한 맛이 퍼졌다. 잘익은 오렌지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맛있는 오렌지는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넘어갔고, 내 입은 오렌지 향을 풍기며 더 달라고 요구했다. 그에 의해 내 눈은 그의 손에 들린 오렌지에 가 있었다.

 

"오렌지가 달콤해서 맛있네요. 그리고 누가 오빠...?"

 

 

M. 짙은 눈동자는 나의 손끝에서 떠날 줄을 모르면서 삐죽이 날이 선 말을 하는 것이 퍽 귀엽다. 시트러스계 과일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그 향을 풍기며 조잘거리는 입술은 조금 식욕이 돋았다. 그러나 입 밖으로 뱉기엔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저 오렌지 과육 하나만 더 쪼개어 탐나는 입술 사이로 밀어 넣었다.

 

“여기 너랑 나 말고 또 누가 있어?“

 

 

N. 오렌지를 쏙 입에 넣었다. 역시 맛있었다. 오물거리면서 저 뻔뻔함에 감탄이 났다.

 

"그러게요. 오빠는 없는데. 게다가 둘 다 남자인데요."

 

 

M. 남자는 오빠 소리 좀 하면 안 되나? 단호하기 짝이 없는 말에 입꼬리를 주욱 끌어내렸다. 손 아프게 그거 까줬으면 좀 한번 해 주지. 하여튼, 이 새끼는. 쯧. 결국 먼저 포기하고 등을 돌린 건 나였다.

 

“근데 오늘은 또 왜왔냐.“

 

 

N. 입꼬리가 내려갔다. 오빠란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은가? 주변에 여자가 없구나...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다 들려온 질문에 곰곰이 생각했다. 왜 왔더라? 그야...

 

"심심해서요."

 

 

M. 당연하게 흘러나오는 이유는 우스웠다. 그래, 이놈이 아주 날 쉽게 보는구나. 헛웃음을 삼키며 소파에 늘어졌다.

 

“넌 내가 아주 네 친구 같나 보다?“

 

 

N. 옆에 앉아 오렌지를 까먹었다. 친구 같나? 친해졌다. 혼자보단 좋았다. 그래서 틈틈이 온 건 아닐까.

 

"친구 같은 아저씨죠. 옆집 포근한 아저씨."

 

 

M. 아니, 내가 나이 서른에 저런 소릴 들어야 해? 잔뜩 부은 얼굴로 노려보지만 뉴트놈은 멀끔한 표정으로 뭐가 잘못됐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너한테 푸근할 생각 없는데. 에이, 시발. 말을 말자.

 

“거기 서 있지 말고 밥이나 차려. 배고파.“

 

 

N. 칭찬을 해줘도 왜 저런 얼굴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냥 소심한 성격인가? 밥 차리라는 말에 일어서서 주방에 가다 뒤를 돌았다.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우리 집에서 라면 먹을래요?"

 

 

M. 우리 집에서... 뭐? 너무 쇼킹한 소릴 들어 놀라 벌떡 일어났다. 저거 내가 생각한 그 의미니? 한참 흔들리는 눈으로 그 애의 뒤를 쫓았다.

 

“…어어??“

 

 

N. 갑자기 벌떡 일어남에 놀라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왜 저런 반응이람.

 

"우리 집에서. 라면. 먹어요."

 

 

M. 제 할 말만 쏙 하고는 냉큼 현관을 나서는 뉴트의 등을 바라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따라나섰다. 맨발에 슬리퍼만 끼워 신고 옆집으로 넘어서자 주방께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진짜 라면 먹자고?“

 

 

N. 주방에서 냄비를 꺼내고 물을 받았다. 그리고 라면을 꺼내려는데 민호가 들어왔다. 당황함과 얼이 빠진 모습으로 진짜 라면이냐고 묻는다.

 

"그럼 진짜 라면이지 뭘 먹어요?"

 

 

M.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어떻게 말해. 형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 남자인데. 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고 거실 바닥에 앉았다. 너 솔직히...

 

“TV 이런 거 잘 안 보지?“

 

 

N. 집에 TV도 없는걸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라면 물을 끓이면서 대답을 했다.

 

"네 잘 안 봐요. 그래서 여기도 없고.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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