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N. 결국 고민은 다음 날까지 지속 되었다. 머리와 배가 아파왔다.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연애가 서툴렀기에 좋음의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이제 10대를 벗어난 나와 내 주변은 익숙하지 않은 문제 투성이었고, 그래서 나보다 성숙한 사람에 의해서 구분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민과 고민의 끝에서는 나 또한 민호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호감과 사랑의 차이를 몰랐기에 모든 행동을 호감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고민의 정리를 마치고 폰을 들고 연락을 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연락을 받을 수 없다는 안내음이었다. 몇 번을 전화해보고 문자까지 보냈다. 화가 났을까. 다시 보지 않으려는 걸까. 왜 고민해보라 하고 연락을 받지 않는 걸까. 걱정, 불안, 초조가 섞여 온종일 폰만 들여다보았다. 조용한 휴대폰. 간간이 들리는 알림음에 폰을 보고 실망 하기만을 수차례. 결국 직접 초인종을 눌렀다. 불이 꺼졌지만 자고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계속 누른 초인종에는 반응이 없었고 결국 문 앞에 쭈그려 앉아 한숨만 쉬었다. 결론을 찾았지만, 그가 없다. 어서 돌아오길 빌며 문에 기대있었다. 봤다는 연락이라도 왔으면.

 

 

M. '대리님. 이제 슬슬 넥타이 좀 바꾸시지?'

 

며칠째 같은 타이를 메고 출근하자 보다 못한 여직원이 슬림한 디자인의 체크 타이를 선물했다. 셔츠야 사 입는다지만 타이는 못 바꾼 탓이었다. 어, 근데 얇은 건 내 취향 아닌데. 탐탁지는 않았지만 선물한 성의를 생각해 앞에서 바로 메었다. 오늘은 집에 들러서 옷을 챙겨야겠다는 생각 따위를 하며. 그러고 보니 친구 놈 집에 신세를 진 것도 제법 되었고.

 

오늘도 날을 넘긴 야근을 끝내고 집에 도착할 때쯤엔 이미 피곤이 온몸을 꽁꽁 감싸고 있었다. 습관처럼 올려다본 그 애의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너는 잘 지냈니? 물음이 맴도는 입에 마른 담배만 빼어 물고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올라선 집 앞에는 뉴트가 있었다. 마르고 긴 그 몸을 웅크린 채. 쟤가 또 술 먹고 집을 못 찾나.

 

“이 봐, 학생. 여기 너희 집 아냐.“

 

 

N. 몇 일 동안 계속 나와 문앞에서 기다렸다. 그가 퇴근할 때쯤의 시간에 나와 기다리다 찬바람에 내 몸의 온도가 내려갈 때쯤에 들어갔다. 오늘도 겉옷을 입고 문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리고 발소리가 들리고 오랜만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았다. 뭐했다고 이제야 나타났는가. 그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눈가에 열이 오르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일어났다. 우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옷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나한테 미션 주고 왜 갔어요?"

 

계속 고민하라던 말을 듣고 고민만 했건만. 거기서 사라진 그에게 화가 났으며 안도감 또한 들었다. 다시 볼 수 있어서.

 

 

M. 손등으로 눈가를 쓰는 움직임에 눈길이 머물렀다. 얼굴은 보여주지도 않고, 둥그런 머리통만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당장 그 애의 앞에 다가가 짙은 그 눈동자에 나를 담고 싶었고, 말간 뺨을 쓸어주고 싶었지만 입술 새에 물린 불이 붙지 않은 마른 담배만 잘근 씹었다. 이사를 해야 하나, 이건 뭐. 저 순진한 어린 애는 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주워듣고 진짜 고민이라도 했나 보다. 그저 울컥한 마음에 질러낸 단순한 투정에 가까웠던 말을. 미련스럽게도 사랑스럽다. 어린 애들은 다 이런가. 문득 피곤이 밀려왔다. 나는 종인 쓴맛이 번진 입술 새에서 남은 미련을 뱉어내듯 담배를 뱉었다.

 

"그래서. 대답은 생각했고?"

 

 

N. 눈가에 열이 오르고 코는 자꾸 훌쩍였다. 계속 훌쩍이니 어지럽기도 했다. 눈을 한 번 더 비비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가지 마요."

 

뭐라 말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저 떠나지 않았으면 했고 그가 좋았다. 이게 단순한 호감일지라도 일단은 떠나지 않으면 했다.

 

 

M. 흔들리는 목소리 끝에 대롱이 달린 습기의 무게는 그대로 나를 짓눌렀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좋은가. 이대로 달려나가도 좋은지, 아니면 나 스스로 먼저 멈춰서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다. 어른은 비겁한 법이었다. 어리고 순진한 아이들의 것과는 다르게 아는 것이 많은 어른은 되려 덜자란 놈들보다도 더욱 몸을 사려 내는 법이었다. 잠시 마른 손끝으로 입가를 문지르던 나는 복도 벽에 어깨를 기대었다. "뉴트. 나는 네 이웃으로 곁에 있고 싶지 않아."

 

 

N. 이웃으로 곁에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국 떠나버리는 건가 보다. 괜히 가지 말라고 했다. 그냥 아무 말 말걸 그랬나 봐. 조용히 끄덕이고는 내 집으로 갔다. 이 이상 얘기하면 붙잡는 애 같잖아. 싫다는 걸 뭐...

 

"알았어요. 잘자요..."

 

 

M. 어깨를 늘어트리고 제 집으로 향하는 그 애의 얼굴이 주홍색 층계 등에 비췄다. 벌건 열을 품고 번들거리는 그 마른 뺨에 나도 모르게 손이나가 그 애의 손을 잡아 쥐었다.

 

"너는 내가 어떻게 네 곁에 있길 바란 건데?"

 

아, 구질거려. 나.

 

 

N. 차가웠던 손이 따뜻해졌다. 어떻게 있길 바라냐고?

 

"그냥 떠나지 말고 곁에 있어 줘요."

 

부모에게 일가지 말라는 애 같다. 외로워서 칭얼대는 애. 정확히 어떻게 있어야 할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대로 나를 싫어하지만 않으면 된다.

 

 

M. 그냥 떠나지 말고. 너는 그저 네가 외로워 나를 붙드는 것인가. 마른 손목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빠졌다. 길지 않은 한숨을 내쉬고는 눈물이 아롱이는 뉴트의 눈가를 손등으로 닦아 주었다. 짓무르지 않게 조심스럽고, 꼼꼼한 손길로. 천천히.

 

"나는 네가 자꾸 생각이 나. 자꾸 걱정이 들고 안 보이면 답답해. 온종일 내 마음 속에서 네가 뛰어다녀.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말이야. 그런데 너는 아니면, 나는 너를 괴롭게 할 거야. 그렇지? 그러니 나는 네 곁에 있을 수가 없어."

 

마치 달래는 양 차분히 흘러나온 말이 그 애에게 얼마나 닿았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눈을 맞추는 그 짙은 눈동자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N. 이게 고백인데... 저게 날 찬 거야 아님 좋다는 거야? 그리고 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나는 인상을 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떠난다고요? 내가 언제 괴롭다고 했는데요? 괴로웠으면 단 한 번이였어요. 아저씨가 내 연락을 모두 씹고 내가 이 추운 날 밖에서 아저씨 기다린 거. 아저씨가 어떻게 내 맘을 알아요? 괴로우면 가요. 안 말려요."

 

어찌하든 상관없다. 벌써 이 관계는 팽팽히 당겨져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M. 뉴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 야근에 뇌가 굳은 건지, 아니면 나는 여전히 너의 애정을 의심으로 보고 있는건지. 잔뜩 찌푸려진 눈을 들여다보아도 보이는 것은 그저 한껏 흔들린 시선의 내가 전부였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뺨을 겨우 움직여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네 곁에서. 너와... 그러니까. 너에게 사랑을 쏟아 부어 주고 싶다는 거야. 연애를 하고 싶다는 거야. 다른 사람 아니고 너랑. 그런데도 내 옆에 있을래?"

 

 

N.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저 정도일까 아님 단순한 호감일까 고민했다. 솔직히 떠나는 게 싫어서 붙잡은 거다. 그래도 연애 한 번은 연상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볼게요. 되도록 긍정적으로."

 

일단 오늘까지 바람맞게 한 복수는 한다.

 

 

M. 그러니까. 마음 한켠에서 핀 열이 점차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다시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어내며 손안에 쥐인 마른 손목을 꾸욱 쥐었다.

 

"너 한 번 오면 못 물려. 나는 가벼운 마음도 아니고. 잘 생각해."

 

 

N. "잘 생각해볼게요. 내가 좋다는데 아저씨가 더 생각해보라니 더 생각해볼게요. 잘 자요."

 

꾹 잡은 손을 떼어내고 도어락 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고 따뜻한 공기가 들어오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M. '내가 좋다는데.'

 

그러니까, 앞뒤 다 빼고 저 한 문장만 귀에 맴돌았다. 좋다고. 그 애의 입에서 처음으로 흘러나온 단어에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았다. 어느새 제 몸뚱이를 숨겨 낸 파란 철문 앞을 몇 번이고 서성이다 초인종을 눌렀다.

 

"야. 잠시만. 잠깐만."

 

너 그러고 들어가면 형 잠 못 자.

 

 

N. 쉴 틈 없이 울리는 초인종에 문을 열었다.

 

" 왜요?"

 

 

M. 빼꼼히 열린 문틈을 팔로 받치고 몸을 비집어 넣었다. 한껏 치켜뜬 눈 주위로 발간 열이 몰려 있어 괜히 또 마음이 쓰렸다.

 

"너 나 좋아해?"

 

얼른 안아주고 싶어서 너무 직구로 던졌네.

 

 

N. 문 비집고 들어오는 건 선수가 다 됐네. 따가운 눈을 비볐다.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M. 눈을 비비는 손을 떼어내고 조심스레 손끝으로 쓸었다. 금세 부어오른 눈가가 쓰리지는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처럼, 그렇게?"

 

 

N. 당연히 그렇게 좋아하는 거지. 보고 싶고. 그런.

 

"응. 그렇게. 그렇게 좋아해요."

 

 

M. 아, 시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좋아한다고. 내가 너를 좋아하듯이. 가슴팍이, 입가가 간질거리며 자꾸 웃음이 번졌다.

 

"그럼, 연애할래. 우리?"

 

 

N. 바보같이 웃어대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꼭 안고 등을 어루만졌다. 곰 같은 아저씨랑 연애해야지.

 

"응. 해요. 우리 연애해요."

EP. 10

FIN.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