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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민호가 갔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못 했는데.

 

내 일상은 다시 민호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갔다. 느긋하고 따분한 날. 오늘따라 늦잠까지 잤다. 이불에서 나오기 싫었다. 마치 비 오는 날 같았다. 축 처지고 쉬고 싶은 날. 결국 침대 위에서 따분하게 보냈다. 연락 올 줄 알았던 폰은 울리지 않았고, 결국 게임과 휴대폰으로 장난만 쳤다. 내일은 무엇을 할지 고민이었고 조용한 옆집에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을 민호를 모르던 날의 생활로 돌아갔다. 갑자기 생기던 일과 방 청소를 하며 휴대폰을 흘끗 봐왔지만 조용했다. 추욱 어깨가 내려지고 무덤덤해지기를 시간에게 부탁했다.

 

 

M. 힘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힘든 건 반칙 아닙니까? 사람이 밥 처먹을 시간은 줘야지, 시발. 출장지에서의 일정은 타이트하다 못해 피를 말렸다. 신입 때도 하지 않았던 고된 일정에 지쳐 나는 뉴트에게 잘 도착했다는 문자 한 통 보내지 못했고, 그렇게 일주일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피곤에 찌들어 호텔 침대에 몸을 던지고 나면 잠이 들기 전 그 짧은 수 분 간에도 나는 때로 그 애의 말간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 너는 무얼 하고 있을까. 오늘 너는 웃었을까, 아니면 심통이 난 얼굴로 입술을 툭 내밀었을까. 나의 부재에 시무룩해 하거나, 외로워 했으면 좋겠다. 너도 잠이 들기 전 나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한 겹 덧입었으면 좋겠다. 막연한 바람들이 차곡히 쌓여갔다. 그리고 돌아가기 이틀 전이 되어서야 나에게는 짧은 여유가 생겼고, 그 틈을 타 잡화점에서 파는 손바닥만 한 엽서 한 장을 샀다. 그저 엽서의 풍경이 예뻐 샀지만 나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수신인을 정하고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할 말은 많지 않았다.

 

「나는 좀 바빴는데, 그 와중에도 네가 생각이 나더라. 언젠가 이곳의 햇살 아래에서 네가 웃는 모습이 보고싶어... 사실은 그냥 지금, 당장 네가 보고 싶어.」

 

몇 줄 채워지지 않은 엽서는 그대로 나의 손을 떠났고, 나는 그 엽서보다 먼저 집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일정이 꼬인 바람에 다시 또 다른 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난 뒤에야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인정했다. 그래.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고. 머뭇거림은, 고민은, 충분히 길었다. 나는 이제 이대로 그 애에게 부딪칠 생각이었다. 좋아함은 그대로 물처럼 번졌다.

EP.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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